제주 올레걷기

올레를 끝내다

팡도라네 2024. 3. 4. 06:10


🔲17 올레 ~ 21 올레, 올레 걷기 마치다


 

 
'17' 올레, 무수천
 
 
버스에 내려 올레 표지판을 보고
무작정 걷다 보니
눈에 익은 학교가 보인다

훗 16 올레로 역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모든 근심이 사라진다는 '무수천'
깊은 계곡은 난대림으로

치장되어 조심하게 다가서니
저 멀리서 울림소리도 장대하고도 깊은
환상적인 계곡이다
 
 
귀공자 스타일의 하얀 바위를 한참이나
넋 놓고 보고 있었다
곳곳에 푸른 물을 담아내는 큰 그릇 같은
 
무수천을
언제가 상류탐사 투어를 상상하니
신이 저절로 난다
 
계곡의 물이 모이는 월대에서
소나무와 팽나무의 자태를 감상하며
길에서 만난 여인과 즐거운 말을 섞는다
 
 
같이 걷고 싶지만
꼭 보고픈 카페에  들러 뜨거운 커피로
마음을 녹여 다시 걷는다
 
신기한 소리로 다가 선 해변에
파도가 밀려가면 촤르르 몽돌 소리가 나는
'알작지'
 
이호테우 해변을 거쳐 도두봉에 오른다
오른쪽의 비행기와 함께 걷고
힘찬 이륙을 하는 그놈을 부럽게 바라보며
 
 
용두암까지 해변길을 걷고 걸어서
푸른 물의 '용연'까지 왔다
제주의 역사가 숨 쉬는

'성짓골' 역사마을과
조례동 문화축제를 끝으로
긴 여정을 마친다
 
 
2016. 11. 27.


 

 
17 올레, Cafe The Moon
 

무수천의 장엄한 끝이 궁금해진다
끝은 장대하리라는 믿음은
공원의 소나무와 월대천이 보답인 것 같다

올레 걷다가 들리는 멋진 카페는
여행 중에 보물을 만나 듯하다
고요히 흐르는 천을 앞마당에 두고

달이 솟아난 듯 자리 잡은
더문 카페

아침이라 조용한 의자에서


커피 내리는 소리를
즐겁게 들으며

향이 피어오르는 여행의 행복을 느낀다

실내에서 이곳저곳 셀카 찍으며
여름날 해질녘
잔잔한 수면에 달빛을 그려보고

멀리 파도 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달콤한 망고 한입으로
여름을 보내고 싶다


2016. 11.


 


'18'  올레, 조천포구

 

 
새벽 4시 넘어
심한 흔들림으로 깨어보니
바다가 요동치고 있다
 
바닥에 누워있는 배의 삼등칸에
파도의 힘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나란 참 보잘것없구나 생각이 든다
 
6시 반에 항구에 정박하면서 정신 차려
나가보니 검은 구름 사이로
붉은 일출이 보인다
 
 
사라봉 올라서 어르신들의 활기찬
아침운동을 보고
별도봉을 지날 때 큰 크루즈 배를 멀리서 만났다
 
은근히 저 큰 배로
파도를 한번 이기고 싶은 맘이 올라온다
18 올레는
 
 
어릴 적 놀던 골목을 걷는 착각에 젖는다
대문 문패도 가까이 보이고
담 너머 이쁜 꽃들과 멍멍이 소리
 
파도치는 삼양검은모래 해변을 보고
지나가는 공터에 자리 잡은
하얀 바늘꽃, 우홍초를 반기며 걷다가
 
오층석탑이 보물인 '불타사'와
남생이 못을 지나고
딱딱한 포장길을 걸으면서
 
 
조천 포구에서 올레가 끝난다
어릴 적 골목길을 다시 걷는 기분이다
 
 
2016.10. 29. 포장길 걷기 힘들다


 

 
'18'올레, 얼굴 & 그리움/시인의 집


 
책에 집중하다가
이 먼 곳까지 와서 생각하며
창을 본다

어제 본 세화해변이
눈으로 들어와 잔잔하게
파도치고

파도의 울림이
마음에 멍울을 남기면
이유 없는 그리움에 슬픈 얼굴로

하늘을 본다


하늘도 그리움으로 파래지고
바다도 하늘 따라 파래지고
하늘도 바다도 구별하지 못한 채

그리움은 파란 얼굴만 남겨 놓는다

몰래 구름이 다가와
입술 맞추어 주지 않았다면
저녁놀 때까지

서서 창가에서 울고 있었을 게다


 
2016. 8. 시인의 집에서 얼굴을 느끼다

얼굴 솟대

 

 
 '18-1' 올레, 추자도
 
 
올레이며 '해안누리길'이어서
월요일부터 날이 게이길 고대하며 기다려
오늘에야 찾아간 추자도
 
하루를 머물려고 시작한 첫발은
해가 모처럼 나면서
훅 찌는 날로 힘들어 포기한다
 
상추자도엔 멋진 등대와
추자교가 저 멀리 그림처럼
그려져 있고
 
 
자동차길이라
오르막과 내리막이 빈번하며
저 멀리 항구가 보이는 걷기 힘든 코스이다
 
그래도 새로움을 기대하며
걷다 보니 동백숲이 길을 만들어 주는
흙길을 걸을 때
 
파도가
열정적으로 사랑을 고백(告白) 해 온다
나무는 땅에 박혀 움직일 수 없고


파도의 갈기를 높이 쳐들었지만
벼랑의 높이로 가까이할 수 없어
오늘도 파도는 소리 내서 운다
 
사랑은 항상 진폭이
같을 수는 없는 것
그 길을 벗어나니 조용해진다
 
나의 사랑도
열정의 파도갈기처럼
찬란한 때도 있었을까?
 
 
길 가다 눈 마주친 하얀 줄무늬 나비
어느 영혼으로 내려와 나를 반겨준다
한 마리가 펄럭이니
 
어디서 나타난 나비 때의 너울에
나도 덩달아서 춤을 춘다
 

 

2015. 6. 18.


 


'19'  올레,  함덕해변
 
 
비 올 확률 30%는
비가 오는 걸까? 안 오는 걸까?
계속 내리는 비를 맞으면 혼자 투덜거린다
 
밭들 사이 농로 길엔
불어난 물로 징검다리 건너 듯
물로 첨병첨병 뒤꿈치 만으로 걸어간다
 
농로를 어렵게 지나고
'벌러진' 동산에 도착하니
솔낙엽과 갈갈한 화산재 길을 건너며
 
 
비로소 꽃들이 눈으로 들어온다
축축한 습기 먹고 쏙 올라온 버섯群들
대장인양 가는 길을 방해하며
 
소나무 깊숙한 숲길에선
물웅덩이 고이고 날씨마저 어두워져
발걸음을 놓친다
 
우산 펴고 빗방울 소리에
어릴 적 의사놀이 하던 소녀의
살 내음의 같은 향취에 혼자 얼굴 붉어진다
 
 
안갯속에서
거대한 물체의 움직임에 깨어나 보니
회색 풍차가 나무 사이로 스스로 일어난다
 
비금도에서 돈키호테 닮은 그 놈이다
약 20km의 반도 못 걸었으나
어느덧 걷는 것도 즐거워지기 시작한다
 
비도 걷히고
이틀에 4백 명의 희생자가 났다던
4.3 사태의 북촌마을 포구에서
 
 
화가 치밀어 올라온다
 
 
2016.10.1. 비가 오는 올레를 걸으며


 

 
'19' 올레, 서우봉 산책길


저녁에 보나
아침에 보나 그녀는 다 이쁜데
바다가
하늘을 쏙닥질해서

오늘 아침에 또 오게 한다

서쪽으로 지는 햇살 속에
붉은색을 머금은
노랑 유채

마치 연한 화장을 한 모습 같아
속살을 보여주지 못한다


아침에 강한 햇살이
숨을 고르고
바다는 에메랄드로 엷어져 갈 때

파란 하늘 아래서
유채는 노랑 진실을 뿜어 된다

빛들이 순해지면
빛들을 타고 날아온 일벌이
꽃들 위로 날갯짓 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노란 속살을 보여주는
꽃들로
봄은 속절없이 오고 있다


2017. 3. 12. 넘 이쁜 서우봉


 


'20' 올레, 팡도라네
 
 
'김녕서' 포구에서 시작한다
'바람의 코스'라고 했듯이 촘촘하게
큰 바람개비(풍력발전기)가 맞이하고 있다

포구 마을엔 금속공예품으로 
돌담을 꾸며 놓았는데
마을홍보를 위한 노력이 엿보인다

작품의 의미가 하나하나 다가온다
아쉬움은 검은 돌담에 색감이 
조금은 덜 어울린 듯
 
 
오늘은 안개 때문에
바람개비가 죽고 바다도
큰 호수마냥 평활하다
 
'성세기'해변,
카페가 잘 어울리는 '월정리' 해변과
광활한 '세화' 해변은 또 하나의 발견
 
넓은 세화해변을 가로질러
신발 벗고 혼자 걸어 본다
사람은 드물고 잔 파도에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모래가 밀려오고 간다
걷다가 동행자가 생겨서
 
얘기하며 힘든지 모르게 잘 왔는데
종점에서 헤어지자니 망설여진다
게스트하우스 같이 가자던 요청을
 
매몰차게 거절하고
바닷가로 걸어간다
혼자 걷는 법에 익숙해서
 
 
발자국을 해변에 꾹 남기면서
마음 짠하다
혼자인 것을
 

 

2015. 6. 15.


 

 
'21' 올레, 지미봉
 
 
제주 해안길을 걷다 보면
이동수단을 도로에 세워 놓고
남자들이 소일로

술 한잔 하는 풍경 속엔
 바다엔 아낙들이 자맥질과
썰물에 조개를 힘들게 긁고 있는

장면을 자주 본다
'제주해녀' 박물관에서
해녀들의 힘과 역사를 보았고


보온 슈트 없이 추운 겨울바다에
버다에 들어가셨던
先代의 '님'에게 슬픔이 밀려온다
 
 21 올레는
사람 사는 마을과 검정색으로 땅심이
건강 해 보이는 밭을 먼저 지난다
 
멀리 모래사장이 보이는 섬에 끌려
징검다리를 건너니
'토끼섬'이 나온다
 
 
공식 이름은 '문주란 자생지'
고동 줍는 어르신(남자?)에게 다가가
섬을 건너가는 방법을 물었더니
 
건너가자면 오후 4시경이며
물이 무릎 이하 일 때 가능하단다
강 포기하고 즐거운 대화를 하였다
 
마지막 코스 '지미봉'에 올라
우도와 성산봉을 조망하니
海霧(해무)로 잘 보이지 않지만
 
 
작년 올레 1코스에서 본 것으로 만족한다
그리고 작년 못 마친 
1 올레의 해변길을  마저 걸으며
 
시작과 끝남이 없음을 認識(인식)한다
 
 
2015. 6. 16



Epilogue


벌노랑이꽃
 
 
'무릉생태' 학교에서
쉼을 하며 아침에 삼각김밥 하나
점심으로 나머지 김밥을 베어 문다
 
전에 완주하지 못한 12 올레 육지 쪽
꼭 걸어야 하나는 고민에 빠지면서
결심한다. 마저 걸어야지
 
처음으로 사진 찍지 않고
단출하게 그냥 걷자고 다짐하며
홀가분하게 걷는다
 
 
핸폰을 백에 넣고 주변 꽃들을
무시하면서 걷다가 귀한 벌빨갱이꽃을
발견한다
 
자꾸 나에게 안겨 오듯이
지금 넘 힘든데 자꾸 말을 걸어온다
할 수 없어 배낭 내리고 인증샷 하나 올린다
 
인터넷에 뒤져봐도
저렇게 빨간 벌노랭이꽃은
없는 듯 귀하다
 
 
올레가 끝나니까
노루가 와서 놀다 가고
안 보이던 꽃들도 그냥 옵니다
 
제주의 동식물이
다 친구가 되는데
조금은 아쉽습니다
 
이 꽃의 꽃말이
'다시 만날 때까지'라네요
그래요 올레!
 
 
'14년부터 쭉 고마웠어요
기약할 수 없지만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2017. 5. 2


 


올레를 끝내며
 
 
'14년 9월에 시작한 올레 걷기는
제주를 사랑하게 만들었다
한담해변을 보고 더 깊어진 사랑앓이는
 
어디서나 숲을 보고
파도를 들을 때마다
주먹만 한 제주의 가슴앓이로
 
마음으로 들어와 에리고 시렸다
그때마다
달력을 보고 돌아오는 비행기 티켓팅에
 
 
매달리고
그런 설렘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는지 모른다
올 때마다
 
걸을 때마다 시린 앓이 실을 가슴에서
뽑아내고
바람에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에 감정 돌 위에
바다에 실려 보내면서


이젠
가슴이 덜 시린 듯 먹먹한 기분이다
걸어서 행복했고

길이 있어서 아프고 설렘이 있어서
아름다웠다
아듀! 올레               
 
 
2017. 5. 2.

 
                         - the END -